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2002)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좀 불편했습니다. 영화는 출소한 종두(설경구)의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그는 처음부터 문제를 일으킬 것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가족들에게조차 환영받지 못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모습은 쉽게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가 진행될수록 점점 이 인물에게 마음이 갔습니다.
그리고 공주(문소리)가 등장하면서 영화는 완전히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뇌병변 장애를 가진 그녀는 가족들에게 방치된 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종두는 공주를 보고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합니다. 처음에는 그를 미워해야 할 것 같았지만, 영화는 단순한 감정을 뛰어넘게 만들었습니다. 이 둘의 관계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정말 ‘다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 그러나 그들만의 세계
종두와 공주는 사회적으로 가장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전과자이고, 한 사람은 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둘 다 사회에서 외면받는 존재였고, 어쩌면 그래서 서로에게 끌렸는지도 모릅니다.
처음 종두가 공주의 집을 찾아갔을 때, 솔직히 많이 불안했습니다. 그가 어떤 행동을 할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종두를 단순한 악인으로 그리지 않았습니다. 분명 그의 행동은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주와 가까워지는 모습은 어딘가 순수해 보였습니다.
공주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는 종두를 두려워했지만, 점차 그의 존재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종두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상상 속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현실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움직임을 영화는 마치 꿈처럼 보여줬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공주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 행복을 오래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종두와 공주는 서로를 필요로 했고, 함께할 때 가장 자연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공주의 가족들은 종두를 혐오했습니다. 그의 과거 때문이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그가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영화 후반부, 종두가 공주와 함께 밖으로 나갔을 때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모두가 그들을 이상하게 바라봤고, 일부는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종두는 체포되었습니다.
이 장면이 유독 가슴 아팠던 이유는 단순히 종두가 감옥에 갔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진짜 범죄를 저질러서가 아니라, 사회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공주의 가족들은 그녀를 방치하고, 원하지 않는 삶을 강요했지만, 오히려 종두만이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줬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관계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설경구와 문소리의 연기, 그 이상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배우들 미쳤다."였습니다.
설경구는 원래 연기를 잘하는 배우로 유명했지만, 이 영화에서 그는 정말 현실 속에 있을 법한 인물처럼 보였습니다. 거칠고 충동적이며 감정 조절이 안 되는 모습, 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순수함이 느껴지는 연기가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문소리. 그녀는 정말 ‘공주’ 그 자체였습니다. 단순히 몸을 뒤틀고 발음을 흐리게 한다고 해서 이 캐릭터가 완성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공주의 내면을 연기했습니다. 특히 혼자 있을 때, 종두와 함께 있을 때, 가족 앞에서 있을 때 보이는 미묘한 표정 변화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만약 다른 배우들이 이 역할을 했다면 오아시스는 전혀 다른 영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결말이 남긴 씁쓸한 여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쉽게 잊히지 않았습니다. 종두가 잡혀가고, 공주는 다시 혼자가 됩니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한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공주는 종두가 남긴 흔적을 바라보며 그와 함께했던 순간들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여전히 자유롭게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마치 영화가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 이들의 사랑은 진짜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대로였습니다. 공주는 다시 가족의 보호 아래 들어가고, 종두는 다시 사회에서 격리됩니다. 그리고 관객들은 묻습니다. 우리는 정말 ‘다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왜 ‘오아시스’는 잊히지 않는 영화인가
오아시스는 분명 불편한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영화의 힘이었습니다. 보통의 사랑 이야기라면 감동적인 순간과 낭만적인 장면이 많아야 하지만, 이 영화는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줬습니다.
이창동 감독은 우리가 외면해 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오아시스는 단순한 로맨스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편견과 사회가 만들어낸 경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도 계속 마음속에 남는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공주의 춤, 종두의 표정, 그리고 그들이 함께했던 짧지만 강렬한 순간들.
그들의 사랑이 정말 사랑이었는지, 아니면 외로움이 만들어낸 착각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순간만큼은 그들만의 ‘오아시스’가 존재했다는 것이었습니다.